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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Sermon

웨이빌리지 수요 기도회 준비 (요 1:9~)

9절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 참 빛?

반대로 말하자면 거짓 빛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메시야가 침례요한인지, 엘리야인지, 혹은 또 다른 선지자인지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리스도께서만이 참 빛이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거짓된 빛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각자의 삶마다 다르겠지만 결론적으로

그 거짓된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게 되는거죠.

 

요즘 풍조에 따르자면 자기 자신을 믿고, 신뢰하며, 자신의 독립적인 마음가짐으로

타인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성공을 거두는 문화,

혹은 적당히 노력하고 삶을 영위하자는 문화 등 다양한 문화와 문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입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아닌 나를 바라보고, 능력과 세상을 의지하게 만드는 거짓된 빛입니다.

 

1. 우리의 기도 제목은 삶 속에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빛으로 보이는 것과 빛은 다른 것이기에 빛을 구별 하게 해달라고,

세상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보고 따라가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합시다.


 

2) 곧 세상에 와서 /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빛으로 보이는게 많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있는 우리에게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찾아오시어 우리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참 빛이 왔다는 것은 우리가 빛처럼 생각했던 것이 다 어둠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셔서 빛을 비춰주셨다는 것입니다.

 

2. 기도제목은 지금도 우리를 비추고 계신 그리스도의 따듯한 사랑의 빛을 누리며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신 그분을 밀어내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 마음 가운데

받아드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10절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0절에서 핵심 키워드가 2개 나옵니다. 바로 "세상"과 "그" 입니다.

이 두 단어가 세번이나 나오는데요 이는 그와 세상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무엇인가 관심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다면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내가 관심있는 분야나 관심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10절에서 이야기하시는 분은 "말씀이자 빛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3번이나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하실만큼 관심이 있으시다는 건데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지으셨지만, 세상이 그리스도를 몰랐습니다.

이는 마치 엄마가 아이를 잉태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한 것과 같으며, 아이가 태어나 자랐지만 엄마를 몰라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세상을 사랑하셨던 그리스도이셨지만, 세상은 예수님을 몰라보고 냉대하는 굉장히 일방적이고 아픈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3. 같이 기도할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해달라고, 세상 이전부터 사랑하시어 지금까지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시는 그 무한한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11절 : 자기 땅에 오매 /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어둠은 빛을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빛이 비치는 순간에

어둠은 사라지고, 그 속에 품은 더러운 것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예수님의 것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백성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안의 더러운 것을 직면하기 싫어하기 때문이죠.

 

4. 오늘 이 시간 기도할 것은

우리 안의 더러운 것들을 직면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더러운것들을 비춰달라고,

더러운 것을 깨끗히 하고, 이미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영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12절 :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은 본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즉 그 이름을 믿고 따라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영접한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 양녀가 되는 것이죠.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옳으며, 진리이며,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굉장히 편협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식민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대상은 카이사르였으며

나머지 신들은 카이사르의 아래에 있는 존재들이었죠.

카이사르만이 황제이며 신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서 식민사회가 이루어지는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인 카이사르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인 예수가 주님이니, 주님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위해 삶을 살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가 그 당시에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5. 우리도 이를 위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시대가 다르고, 믿음의 의미가 많이 약해졌지만

믿음의 선조들 처럼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강인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내일도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살아가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13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나의 노력, 생각, 착한 행실 그 무엇도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것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스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사랑하시고, 지금까지 사랑하시며, 앞으로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났는지, 못났는지 상관없이

단지, 아들로서, 딸로서 우리를 바라봐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누리는 감사의 기도를 함께 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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