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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Book Club

'안식' 1부 그침, Chapter 2. 생산과 성취를 그침

1. 책 속 한 문장
> 우리 문화의 가장 추한 모습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한 사람의 생산성이나 성취로 그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우리는 마치 그 대답을 통해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지 알 수 있을 것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묻는다 35p

> 우리는 많이 성취하려고 애쓰며, 이것은 자신의 가장 깊은 열망을 만족시키려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목표에 이르더라도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이 전도사 기자의 말처럼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헛되고 헛된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이룬 성취로는 하나님 그분을 향한 갈망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계속해서 노력하는가? 왜 자신에게 항상 공허감을 주는 바로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판단하는가? 38p

> 하나님은 분명 이스라엘의 성취나 생산성 때문에 그들으르 택하신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었다. 이들은 반항적이며 자기중심적이었다. 이들은 여호와의 언약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계속 실패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들이 무엇을 하느냐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관계있다. 39p

> 이것이 내가 안식일에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받되 깊이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하루를 구별했던 모든 시대의 신자와-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 하나가 된다. 40p

> 안식일에 하나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일은 우리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사람들을 더욱 귀하게 여길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중갑감에 눌려있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하며 그들과 함께 있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40p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알기 위해서는 '안식'이 필요하다. 현재 '비저니어링'과 함께 읽으며 [[하나님의 목적과 나의 꿈]]에 대해 글을 작성을 하며 적었던 내용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과 욕망에 따라 삶을 살아가며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후에 '안식'을 읽으며 생각이 들었던 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가 바로 '안식'이라는 것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안식'이 없이는 내 뜻과 가치관에 따라 사람의 쓸모의 여부를 판단하여 거리를 두거나 가까이 함을 결정한다. 그것이 내게 유익이고 효율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 마르바 던은 우리 문화의 가장 추한 부분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악한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침'을 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 중 첫째로 '일'을 그치고 둘째로 '생산과 성취'를 멈춰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하나님도 나를 바라 보실 때 나의 생산성과 능력으로 인해 사랑하신 것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 때에도 가장 볼품없으며, 약하고 포로와 노예로 잡혀있던 이들을 이끌어내어 구원하신 사건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었다. 즉 하나님은 예로부터 단 한번도 강대했던 나라와 강한 사람을 택했던 적이 없었다. 이러한 이들을 이끌고 나와 명령하신 것이 바로 순종과 안식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안식'을 구별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듯이 선악을 구별하는 열매를 먹느냐 마느냐의 선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선악을 구별하는 열매는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하여 지혜로울 것 같기까지 하다.  '안식'이 없이 오롯이 생산성을 위해 일에 매여 사는 것은 어찌보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같기도, 더 열심히 사는 기분이 들기도,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행위가 '잠'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줄이는 행위이다. 바쁘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할 때 가장 줄이기 쉬운게 이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는 육체의 생명을 줄이는 것임과 동시에 영적인 생명을 없애는 행위이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행위이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내가 쉬지 않는 것에 취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남들의 쉼과 안식에 대해 칭찬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적어도 쉼이 없이 달려온 입장에서 시류를 읽지 못하고, 뒤쳐져 있으며, 로망과 낭만을 갖고 살아가는 Dreamer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 채 비난을 계속해서 해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과 그들 각 사람에 대해 주권을 가지고 그들의 삶의 속도에 맞게 일하신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그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이유가 내가 '안식'을 할 줄 몰라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읽어버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을 그 자체만으로 사랑하지 못한채 생산성과 성취만을 갖고 판단하는 교만한 재판관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 '그침'을 해야 하는 것이 첫째로 '일'이며 둘째로 '생산과 성취'이다. 쉼 가운데서도 효율을 찾고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내게 큰 숙제이다.  내가 온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 가운데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