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한 목소리의 메아리들
1장 세상을 바로 잡는 일
"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강렬하고 흥미로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당혹드럽게도 그 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가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그 꿈이 대단히 특별했고 의미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알 수 가 없었습니다.
..... 정의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종종 그런 경우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책의 1장이 시작이 됩니다.
1부의 제목에서 말하는 목소리의 메아리들은
우리가 어느 목소리를 바로 듣는 것이 아닌
메아리만 듣는 것과 같다고,
정의와 소망, 평화와 번영에 대한 목소리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상상 속에서 외치지만
우리가 깨어난 다음에는 메아리 만이 남아 아쉬움을 남긴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것을 불의라고 부릅니다.
불의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 많은 법과 규칙을 정하고
경찰과 법관, 변호사들을 통해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 하지만
사회는 이상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자는 지난 50여년의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 1, 2차 대전과 이데올로기의 싸움
대표적으로 히틀러와 홀로코스트가 있음을 알리죠
50년이 지난 지금은
무책임한 물질주의와 자본주의가,
반대편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종교적 근본주의가
새로운 악으로 등장하여 날뛰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의 삶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렇게 뭔가 아주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서구 세계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도
가정과 가족이 해체가 되어가죠.
바른 예절을 갖추는 온유한 기술 (친절과 용서, 감수성과 배려, 관대함과 겸손)은
구식이 되어 버리고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권리'만을 찾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권리'를 찾는 요구는 너무 강력해서 '인간의 권리' 중 하나를 파괴하게 됩니다.
즉, 존재하고 배우고 번영을 누리고, 평화롭고 안정되고,
안전하고,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 주는 곳을 갖고자 하는 열망과 소망의 권리를 말이죠.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모두가 세상이 바로잡히기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제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이하지 않습니까?
사유(思惟)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저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까요?
모두가 세상을 바로잡기 원하는 것이 진실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 진실일까요?
저는, 사람들이 이러한 소망대로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자만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리고자 하는 권리"는 내가 피해를 봐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내가 해주는 친절과 용서는 "누리는 권리"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이 내게 해주는 친절과 용서는 "누리는 권리"에 맞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남이 내게 해주는 것을 바라지
내가 남에게 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이 나의 권리이기 때문이죠.
정의로운 세상이란
내가 먼저 손해를 보고, 용서를 해주고
내가 먼저 친절을 베풀어야 시작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BooK Review > 신앙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서를 배우다 : 들어가며 (0) | 2023.02.21 |
---|---|
용서를 배우다 : 읽기 전의 기록 (0) | 2023.02.19 |
톰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1장-2 (0) | 2022.07.14 |
이야기 사도행전 (0) | 2020.02.12 |
예수님 처럼 Chapter5. review (0) | 2020.01.29 |